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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김영하 작가 9년 만의 신작 소설 <작별 인사>

by 캉쓰 2022.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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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철이는 휴먼매터스 연구소 지구에서 아빠와 단 둘이 살고 있다. 학교는 다니지 않는다. 학교는 비효율적인 구시대의 유물이다. 대신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이따금 아빠가 일하는 연구소의 다른 자녀들과 만날 기회가 생기지만 일회적인 만남일 뿐 친구라고 할만한 사이는 없다.
집에는 세 마리의 고양이가 함께 산다. 높은 곳의 물건을 자주 떨어트리는 갈릴레오와 정확한 스케줄에 따라먹고 자고 싸는 칸트, 늘 웅크리고 앉아 고뇌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카르트 세 마리다. 이중 마지막 데카르트는 고양이이나 고양이가 아니다. 아빠가 연구소에서 만든 고양이 로봇이다. 그러나 고양이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갈릴레오와 칸트의 행동을 모방하며 점점 더 고양이답게 행동이 변화하고 있다. 심지어 갈릴레오와 칸트가 데카르트의 행동을 모방하기도 한다. 그러니 원래의 말을 바꿔, 고양이가 아니나 고양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철이는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 나라 어디에선가 내전이 벌어지고 있고, 게릴라군의 위협이 있다. 휴먼매터스 내부는 무척 쾌적하고 안전하기에 납득이 가는 이유는 아니었다. 아빠가 산책을 나간 이후 비가 오기 시작한다. 우산을 갖다 주려는 생각에 철이는 아빠의 주의를 무시하고 밖으로 나선다. 소광장에서 펫 샵에 들어간 아빠를 발견한다. 펫 샵 앞에서 기다리며 아빠를 놀라게 해 주려는 철이에게 낯선 두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건다.
"어, 등록이 안 되어 있는데?"
"당신은 등록된 휴머노이드가 아닙니다."


김영하 작가 소설 최초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간인 줄 알고 살아온 철이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라는 것. 등록되지 않은 로봇을 모아두는 수용소로 끌려가면서도 철이는 끊임없이 의심한다. 이 이야기는 철이가 인간인지 로봇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렇기에 스포일러가 소용없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P. 106
언젠가 나는, 인간 이외의 동물들은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는 이상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동물은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에, 다만 자기의 기력이 쇠잔해짐을 느끼고 그것에 조금씩 적응해가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잠이 들 듯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종과는 달리 인간만은 죽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기에, 죽음 이후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한다.

P. 194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거야. 고통 없이 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아? 휴머노이드는 저렇게 실려가면 간단하게 기억을 지운 후에 해체하고 부품을 재활용해. 그런데 나를 봐. 인간의 육체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 죽음은 쉽게 오지도 않고, 고통은 끝도 없어.

P. 242
막상 몸이 사라지고 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몸으로 해왔는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몸 없이는 감정다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볼에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이 없고, 붉게 물든 장엄한 노을도 볼 수가 없고, 손에 와닿는 부드러운 고양이 털의 감촉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채 동이 트지 않은 휴먼매터스 캠퍼스의 산책로를 달리던 상쾌한 아침들을 생각했다. 몸이 지칠 때 나의 정신은 휴식을 할 수 있었다. 팔과 다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일 때, 비로소 생각들을 멈출 수 있었다는 것을 몸이 없어지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질문
영원히 살 수 있는 육체를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가요?
정신을 컴퓨터로 옮겨 데이터 세계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나요?



예전에 자주 나눈 대화 내용이다. 내 대답은 한결 같이 '아니오'다. 이유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처음에는 인간의 고유성, 즉 나의 개별성을 존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테세우스의 배를 그때 그 배라고 부를 수 있는가(테세우스의 배가 너무 멀게 느껴지면 [원피스] '고잉메리호'를 생각해도 좋다)의 문제다. 여기에는 정답이 없고 결국 인식하는 사람의 문제인데, 나는 그 둘은 다르다고 인지하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꼭 그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는지 회의적인 입장이 되었다가 지금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다. 음...... 굉장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이다. 정정하자면 이 생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편이 더 평온하게 느낀다.

이 질문들은 육체와 정신을 분리해서 볼지, 통합된 존재로 볼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인간의 본질을 정신으로 본다면 육체는 삶의 불안정한 요인일 뿐이다. 그러나 육체 없는 삶이 지금의 나일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의 감정은 육체에서 생겨난다. 야외에서 햇볕을 쬐며, 볼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육체도 나라는 생각이 더 강해져 간다.

몇 년 전부터 노년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어릴 때는 늙어 간다는 게 슬프고 믿기지 않는 공포로 여겨졌는데 지금은 인식이 변했다. 막상 나이를 먹어보니 생각보다 좋은 것이다.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에서 황선우 작가님이 '이 정도 살다 보면 자기 자신에게 정이 든다'고 한 말에 깊이 공감한다. 조금 더 나다운 방향으로 늙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문장 끝에 마침표를 찍듯 생의 마지막에 '좋은 문장이었다'고 점을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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