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4부작
일명 나폴리 4부작으로 불리는 소설이 있다. 이탈리아의 국민 작가 엘리나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4권의 책을 이르는 통칭이다. 엘리나 페란테는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으로 그 지방을 배경으로 한 책을 썼다. 그러나 작가에 대해 알려진 것은 딱 거기까지다. 그 외에는 모두 비밀로 부쳐진다. 엘리나 페란테가 본명 인지도 알 수 없고, 심지어 작가가 여성이 맞는지까지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녀의 소설은 미친 듯이 인기가 많다. 신간이 출간되면 진풍경이 펼쳐진다.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다는 요즘 같은 시대에 서점에 길게 줄이 늘어서기 때문이다. 엄청난 인기의 이 소설 시리즈는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는 왓챠에서 볼 수 있다. 드라마의 제목인 <눈분신 나의 친구>는 원작 소설의 1권의 이름을 딴 것이다.
줄거리
나폴리 시리즈는 오랜 친구인 릴라가 집을 나갔다는 연락을 받고 추억을 회상하는 60대의 레누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기억은 1950년으로 거슬러 간다. 둘의 만남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릴라는 영리한 데다가 영악한 구석이 있다. 그리고 감정을 태도로 드러내는 데 거침이 없는 성격이라 매력적이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아이다. 둘은 친구가 되었고 레누는 릴라의 천재성에 감탄하면서, 서로 협력해 나가는 데 만족하면서, 은연중에 경쟁하면서, 남몰래 열등감을 느끼면서 우정을 쌓아나간다.
그들이 사는 곳은 나폴리에서도 환경이 안 좋기로 유명한 빈민가다. 남편이 아내를 때리고 패거리 지어 보복 싸움을 하고, 온갖 험악한 말이 일상으로 오가는 그런 곳이다. 철 모르는 시절부터 막연하게 위협적인 생활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그런 행운은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레누와 릴라는 둘 다 똑똑한 아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학교 선생님은 둘에게 중학교 진학을 권유한다. 1950년대 이탈리아에서 그것도 빈민가에서는 여자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한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부모들은 자신의 딸을 가난한 형편에 돈을 벌지 않고 공부를 하려는 이기주의자라고 비난한다. 릴라의 아버지는 릴라를 이층 창문에서 던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결국 레누의 부모는 진학을 허락한다. 이렇게 둘의 인생은 갈리게 된다.
고향에 남은 릴라는 마을의 폭력적인 환경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똑똑하고 아름답지만, 그 마을에서 여자는 좋은 곳에 시집을 가서 애 낳고 살림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였다. 릴라는 아직 결혼하기에는 많이 이른 17살에 결혼을 한다. 연애 시절에는 다정했던 남편은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며 주먹을 휘둘렀다. 릴리의 몸과 얼굴에는 언제나 멍자국이 가득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남편의 구타 사실을 알지만 모른 척한다. 릴라는 원치 않는 임신을 강요당하고 결국 임신하지만 유산한다. 그로 인한 비난도 감수해야 했다. 레누는 레누 대로 쉽지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중학교는 자신보다 집안 형편이 좋은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교과서를 구하기 위해 애처롭게 방법을 알아볼 필요도 없고, 집안 일과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도 없었다. 레누는 자신보다 높은 계층의 아이들과 오로지 머리로 경쟁하며 그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융화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감상
이 소설의 놀라운 점은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사회 전체를 비춘다는 것이다. 레누와 릴라가 자란 빈민가는 마피아와 이웃이나 친구 등 개인이 휘두르는 폭력이 크게 다르지 않은 곳이다. 모순도 가득하다. 모두들 파시스트를 욕하지만 돈을 벌려면 부자인 파시스트 밑에서 일을 해야 한다. 파시스트를 욕하던 사람들이 돈이 걸리면 모두 나서서 동참한다. 이탈리아의 불안한 정치의 이념 대립은 끊임없는 분쟁을 양산한다. 가속화되는 산업화 속에서 노동자는 그저 차귀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여기에 애정관계, 성취욕, 야망, 꿈, 절망, 애증, 연민 등이 버무려지면서, 인간은 결코 개인적인 방법으로만 말해질 수 없고, 그 과정은 단순하지 않으며 사회가 곧 개인이자 개인이 곧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네 권의 분량이지만, 레누의 시점에 따라 관조자가 되었다가, 깊이 동화되었다가, 결코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저었다. 빠르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시대에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것은 소설이기에 가능한지도 모른다. 나와 견해가 다르다고 등을 돌리지 않는 것도 소설이기 때문일 것이다. 싸우고 대립하고 납득이 가지 ㅇ낳더라도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자세를 잃고 싶지 않아 졌다. 아무리 애쓰고 시간이 지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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