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어 가족들과 따로 살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것을 '자취'라고 부른다. '자취'라는 말에는 '임시적'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기 전까지 임시적으로 사는 형태 말이다. 만일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자취는 언제까지 계속되는 걸까? 비혼 주의자라면 영원히 자취를 하고 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30살, 40살, 50살이 되어도 혼자 사는 것은 자취일까? 자취가 끝나는 시점은 언제일까?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서 김하나와 황선우 두 작가가 제시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엿볼 수 있다.
조립식 가족의 탄생
여자 둘이 한 집에 살고 있다. 혈연관계는 아니고 자취도 아니며, 독신의 여성이 둘이자 하나의 생활공간을 영유하는 이야기다.
40대 또래의 저자 두 명은 10년 이상 혼자 살아본 혼자 살기의 달인이다. 저자 중 한 명인 김하나는 '혼자 사는 게 잘 맞는다는 말은 10년쯤 그 생활을 지속해 본 후에 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에세이의 시작을 열었다.
혼자 살기는 자유롭다. 온전히 나만의 방식으로 나의 시간과 공간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이 10년쯤 쌓이면 자유로움은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 장점을 상실하나 보다. 혼자 살기의 단점은 외로움, 임시 거처 같은 불안정함, 외부인의 접근에 대한 불안함 등이 있다. 특히 임시거처 같은 붕 뜬 기분은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어 해소해야 하는 이상한 고정관념이 형성되어 있다. 이 에세이가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그 틀을 깨고 여자와 여자가 동거인으로서, 집이라는 환경을 지내는 곳이 아니라 살아가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다른 저자 황선우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도 저마다 다른 온도와 습도의 기후대와 문화를 품은 다른 나라 같아서,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는 일은 외국을 여행하는 것처럼 흥미로운 경험을 준다.'
각자의 생활습관과 취향, 성품은 마치 다른 나라와 같다. 합쳐진다는 것은 그만큼 진통이 필요하다. 성인이 되어 공동 명의의 집을 구매하고 같이 살기로 결정한 이들도 그러한 시간이 있었음을 밝힌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려면 한 세계의 파괴가 필요하듯이 싸우고 양보하고 이해하며. 여자 둘의 동거는 새 형태의 가정의 모습으로 녹아들어 간다.
동거를 결심하며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매한 일, 친구로 지내는 것과 동거인으로 지내는 것의 실생활의 차이점, 좌충우돌 에피소드부터 40대 독신 여성으로 받아온 편견, 부조리함, 주변의 안 고마운 오지랖 등의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일단 읽어 보세요
이 책은 1차적으로 그냥 재미있다. 내공 깊은 저자들의 글솜씨 덕분이다. 김하나 작가는 광고회사에서 오랜 기간 카피라이터로 일했고, 황선우 작가는 유명 패션 잡지에서 에디터로 일했다. 둘 다 글로 쌓인 내공이 장난이 아니라는 거다. 두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아주 재미있고, 좋다. 우선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서 재미있어서 체크해둔 부분을 하나 공개하자면,
나의 별명은 '망원동 혜민 스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내놓은 뒤 결코 멈추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속세를 질주하고 계신 혜민 스님처럼, 나도 <힘 빼기의 기술>이라는 책을 내놓고는 좀처럼 힘을 빼지 못한 채 바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아이러니와 글의 재치를 동시에 뽐내는 구절이 아닌가.
한편 그들의 나이와 삶에 찾아온 고민이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어떤 세상의 변화인지, 사회적 기준은 누구한테 맞춰져 있고 어떻게 변화하는지와 같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두가 같은 감상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의미가 있는 책이 되리라는 확신은 있다. 나에게는 두고두고 꺼내 읽고 싶은 책이다. 인생 선배 언니들의 일상과 고민을 같이 공감하고 맞장구치며 이럴 땐 어땠어요 하고 조언을 구하고 싶다.
저자 소개
김하나
부산 해운대 출신으로 열아홉 살부터 서울에서 다종 다양한 주거 형태를 거치며 살아왔다. (책이 출간된 시점에서) 2년여 전부터 황선우와 함께 살며 전에 없던 안정감과 거친 풍랑을 동시에 맞아들였다. 요즘은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힘 빼기의 기술>, <말하기를 말하기>,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등을 썼고, 현재 황선우와 함께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를 진행하고 있다.
황선우
부산 광안리 출신으로 열여덟 살에 바다를 떠나 서울로 왔다. 마포구 안에서만 여러 번의 이사를 거치며 1인 가구로 살아오다가, 김하나와 2인 가구가 되어 넓은 집에서 고양이 네 마리와의 삶을 누리고 있다. 20년 동안 잡지를 만들었고 그중 대부분의 기간을 패션 매거진 <W Korea>에서 일했다. <멋있으면 다 언니>,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등을 썼고, 현재 김하나와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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