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성경의 창세기에서 영감을 받아 쓴 소설이다. 이승우 작가는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에 대한 창세기의 일화를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썼다고 밝힌다. 평소 그 장면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오그라들거나 찡그려졌다고 한다. 바칠 것을 요구하는 신도, 그 요구에 순종하는 아버지도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칠 것을 요구하는 신이나 그 요구에 순응하는 아버지 대신 그 요구에 의해 제물로 바쳐지는 아들의 심정으로 들어가 이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믿으려고 했다. 소설을 통해 신의 마음, 즉 믿음의 문제에 접근하려고 했다. 그리고 성경의 다른 이야기가 덧붙여져 다섯 개의 단편이 하나의 책으로 엮였다.
작가 소개
195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다.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 [생의 이면], [그곳이 어디든], [식물들의 사생활], [지상의 노래], [사랑의 생애], [캉탕] 등, 소설집 [일식에 대하여], [미궁에 대한 추측], [신중한 사람],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오래된 일기], [모르는 사람들]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서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다수의 작품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무엇보다 사랑은 잘 말해져야 한다.
예컨대 말하지 않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말해져야 한다.
소돔의 하룻밤
소돔에 나그네 둘이 도착하다. 이들은 사실 소돔을 살피러 온 천사다. 롯은 성문 어귀에서 그들을 보고는 집에 초대한다. 어째서 롯은 성문 어귀에서 올지 오지 않을지 모르는 나그네를 기다려, 손님이 요청하지도 않는 초대를 하는 걸까? 어째서 남자들은 롯의 집으로 몰려와 그들을 강간하겠다고 횡포를 부리는 것일까? 어째서 롯은 손님 대신 딸 둘을 대신 내놓겠다고 하는 것일까?
하갈의 노래
하갈은 아브라함의 몸종이다. 아브라함은 신으로부터 귀한 자손을 약속받았지만 그들 부부에게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부인을 대신하여 하갈은 이스마엘을 낳는다. 그러나 종국에는 아들과 광야로 쫓겨난다. 하갈은 스스로 원해서 아브라함과 아이를 낳은 것일까? 몸종은 자신의 노동력 외에 의지까지도 주인에게 봉사해야 하는 것일까? 주인의 뜻을 따른 결정이 물주머니 하나로 사막을 건너는 일이 되었을 때, 기분은 어떠했을까?
사랑이 한 일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았다. 오래 기다려 온 만큼 귀하게 키웠다. 그런 그에게 신은 아들을 제물로 바칠 것을 명한다. 제사는 신에게 바치는 성심이다. 성심은 가장 진실된 마음이다. 진실된 마음은 가장 아끼는 것을 기꺼이 내놓음으로써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아끼는 존재를 세상에서 없애야만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어째서 신은 그런 요구를 했을까? 사랑의 확인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증명받은 사랑은 무용하다. 사랑하기 때문에 요구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증명한다.
허기와 탐식
이삭은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 이삭은 에서가 잡아온 짐승 고기를 좋아하였기에 장자 에서를 사랑하였다. 죽음이 다가올 즈음 에서를 불러 사냥을 해오라고 시킨다. 그것을 먹고 난 후 축복을 내려주겠노라 한다. 이삭은 단지 고기 때문에 에서를 사랑했을까? 그가 고기에 그토록 애착을 보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야곱의 사다리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여 형 에서 대신 축복을 받는다. 에서는 야곱을 증오한다. 신부를 구하러 먼 마을로 가라고 명을 받았을 때 그것은 에서로부터의 도피이자, 에서의 사냥터 안으오 들어가는 일이었다. 에서의 추적을 피해 두려운 밤을 보내며 신의 음성을 듣는다. 야곱은 그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에 이어 순종하는 자가 된다.
감상
창세기 모티프의 소설이 어떨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페이지를 넘기며 이것은 돌림노래 같은 문체에 매료되었다.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이 모여 하나의 글이 되었다.
사랑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여러 방식이 있다. 예컨대 사랑하기 때문에 요구하지 않고, 사랑하기 때문에 증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책에 나온 사랑은 ,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처럼 상처를 내는 방법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사랑은 잘 말해져야 한다. 예컨대 말하지 않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말해져야 한다.-
책 제일 앞장에 있는 이 작가의 말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너무나 사랑하는 존재를 보듬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책을 마치고 다시 앞 장으로 돌아와 읽은 이 문장들이 마침표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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