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 북안 우크라이나 처음 기록된 사람들: 스키타이
스키타이인이 처음부터 우크라이나 땅에 살았던 것은 아니다. 문헌에 고유명사를 가지고 최초로 등장한 민족은 키메리아인이다. 키메리아인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유목생활을 했고, 철기시대를 이룩한 민족으로 추측된다.
스키타이 건국 신화
건국 신화는 몇 가지 버전이 있다.
1. 스키타이의 땅에 최초로 태어난 사람은 타르기타오스라는 남자였다. 그는 제우스와 드네프강의 신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타르기타오스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가 죽은 뒤 하늘에서 황금으로 만든 기물(쟁기, 멍에, 도끼, 술잔)이 스키타이의 땅으로 떨어졌다. 첫째 아들이 제일 먼저 발견하고 다가가자 기물이 불에 타기 시작했다. 둘째 아들이 다가가도 마찬가지였다. 막내아들은 코라쿠사이스가 다가가자 불이 꺼져 기물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이로 인하여 형들은 왕권을 동생에게 양보한다. 코라쿠사이스 이후의 역대 왕들은 이 황금 기물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보관하고 매년 제물을 바쳐 신처럼 받들었다.
2. 헤라클레스는 열두 가지 시련 중 훗날 스키타이인이 살게 될, 그러나 아직은 아무도 없는 땅에 당도했다. 혹한이 엄습하여 헤라클레스는 사자 가죽을 뒤집어쓰고 잠이 들고 말았다. 깨어나니 말이 사라지고 없었다. 뱀의 하반신을 한 여인에게 말의 행방을 물었는데, 뱀의 모습을 한 여인은 자신과 동침을 하면 말을 돌려주겠다고 한다. 뱀 여인은 헤라클레스가 떠나는 날 잉태한 세 아들이 성인이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물었다. 헤라클레스는 화살 쏘는 동작을 알려주며, 이 방법을 따르는 아이는 그 나라에서 살게 하고 그렇지 못한 아이는 추방하라고 한다. 훗날 성인이 된 아들 셋 중 첫째와 둘째는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고 나라를 떠났고, 막네 아들인 스키테스만이 과제를 풀어 그 땅에 머물렀다.
스키타이의 사회와 흥망
기원전 750~ 기원전 700년 경 스카타이인이 키메리아인을 몰아내고 땅에 주인이 된다. 이름과 그들의 신의 이름으로 보아 이란계 민족으로 밝혀졌다. 스키타이 땅에 사는 모두가 유목민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의 사회는 유목 생활을 하고 호전적인 '왕족 스키타이'와 정주생활을 하고 농사를 짓는 '농경 스키타이' 그리고 연안 도시에서 상업과 가내수공업에 종사하는 '그리스인'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유목민이 정착하여 단기간에 농민이 되기는 어려우므로 '농경 스키타이'는 스키타이인이 도래하기 전부터 그 땅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을 슬라브 족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스키타이라는 거대한 사회 안에 여러 민족이 섞여 있는 것이다.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약 5000년의 긴 세월 동안, 흑해 북안의 광활한 땅을 지배하며, '팍스 스키타카(스키타이의 평화)'의 질서를 유지했다. 그러나 3세기 중엽 고트인의 크림반도 침입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은 우크라이나도 러시아도 스키타이를 이질적인 존재라고 생각해서 자국 내 역사로 다루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러시아의 어원은?
러시아의 국명은 9세기 우크라이나 땅에 생긴 키예프 루스 공국에서 파생되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역사를 다른 나라에 빼앗긴 셈이다. 지금도 둘 사이에서는 '루스 공국'의 이름을 찾기 위한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의 입장은 이렇다. 키예프 공국이 멸망한 후, 우크라이나의 땅은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의 영토가 되었고, 나라 자체가 소멸해서 계승하고 싶어도 계승자가 없었다. 이에 반해 키예프 루스 공국을 구성하던 모스크바 공국은 단절되지 않고 존속하여 키예프 루스 공국의 제도와 문화를 계승했으며 훗날 러시아 제국으로 발전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러시아가 키예프 루스 공국의 정통 계승자임은 새삼스럽게 논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입장에서는 키예프 루스 공국의 정통 계승 여부에 따라, 자기 나라가 1000년 전부터 이어온 영광의 역사를 가진 나라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러시아의 한 지방에 불과했던 단순한 신흥국인지를 가늠하는 국격에 관련된 중요한 문제가 된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의 주장은 이렇다. 모스크바를 포함한 당시의 키예프 루스 공국의 동복 지방은 민족도, 언어도 달랐고 16세기가 되어서는 키예프 루스 공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비 슬라브 부족의 연합체이지, 키예프 루스 공국의 후계자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가혹한 전제 중앙집권 체제인 러시아, 소련의 체제와 키예프 루스 공국의 체제는 전혀 다르므로 별개의 국가다. 키예프 공국의 정치 사회 문화는 몽골에 의한 키예프 파괴(1240년) 이후에도 1세기에 걸쳐 현재 서우크라이나 지역에 번성한 할리치나·볼린 공국으로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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