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가상 세계에서 살 수 있을까? 김대식 교수는 뇌과학자다. 뇌과학자가 왜 메타버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일까 생각했는데, 메타버스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결국 인간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김대식 교수의 강의를 엮은 이 책 <메타버스 사피엔스>는 인간이 어떻게 메타버스에 적응할 수 있는지, 왜 그러는지에 대해 뇌과학적으로 설명을 한다.
-뇌과학자가 알려주는 메타버스
메타버스란 가공, 추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가상세계와 현실이 뒤섞인 세상을 말합니다. 기술이 더욱 발전한다면 실제 생활과 동일한 경험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마크 저커버그도 사명을 '페이스북'에서 '메타'로 바꾸며 메타버스에 주력할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육체를 가지고 현실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가상공간에서 똑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이는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현실 속의 내 몸, 내 경험을 인지하는 일은 뇌에서 일어납니다.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의 강연을 모은 이 책은 인간이 어떻게 메타버스에 적응할 수 있나에 대한 뇌과학적 대답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어떻게 인식할까?
과거에는 사물을 이렇게 본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물에 비친 빛이 눈으로 들어와 '본다'. 그러나 뇌과학이 밝힌 바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무엇도 보지 않습니다. 눈에 들어온 빛은 신호로 바뀌어 뇌에게 전달됩니다. 뇌는 이 신호를 해석해 사물의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뇌가 재구성한 세상입니다.
물론 대부분 실제 세계를 동일하게 인식하겠지만, 만일 뇌의 정보 처리 영역에 문제가 생기면? 네, 다른 사람과 현실을 다르게 느낄 수 있습니다. '동작맹'이라는 장애가 있습니다. 이 장애를 가진 사람은 동작을 이어서 보지 못하고 사진처럼 끊어서 인식합니다. 비장애인의 세상이 동영상이라면, 이들의 세상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밤 꿈을 꿉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참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해도 꿈을 꾸는 동안에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의심의 메커니즘이 발동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믿는 동안에는 그것이 현실이며, 믿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현실을 창조해 낼 수 있습니다.
-메타버스에서 살 수 있는 선천적인 능력: 착시
몇 년 전 한 드레스 사진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파란색과 검은색의 줄무늬 드레스로, 누군가에게는 흰색과 금색의 줄무늬 드레스로 보였습니다. 두 그룹 중 한 그룹은 분명 색을 잘못 인식하고 있었죠. 어째서 드레스 색이 다르게 보일까요?
뇌는 시각 정보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오류가 있다고 판단하면 감각 정보를 수정, 보완해서 최종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이 과정에서 착시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드레스의 색깔은 물론이고, 원근법을 이용한 멋진 그림이 존재하는 것도 눈의 착시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눈앞에 가짜를 진짜로 받아들이는 능력은 현실을 확장합니다. 이는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탁월한 능력 중 하나입니다. 디지털 세상도 얼마든지 현실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제 세상을 감각으로 인지합니다. 하지만 화면 속의 아바타와 나는 확연히 다른 존재로 느껴지죠. 영화 <메트릭스>처럼 몸이 캡슐에 갇혀 있는데도 신체 없이 가상 속에서 생활할 수 있을까요?
-뇌 속의 인체 지도: 호문클루스
다리나 손 등 신체의 일부가 절단되었는데도 사라진 부위의 감각을 느끼는 증상이 있습니다. '환지증'이라는 병입니다. 뇌는 신체 각각에 해당하는 부위가 있습니다. 이를 뇌 속 인체 지도, 호문클루스라고 부릅니다. 다리를 담당하는 뇌에 감각 정보가 들어오면 설사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신체 부위를 느끼게 되죠. 심지어 우리 뇌의 호문클루스는 경험에 따라 영역을 확장합니다.
비가 그쳐 우산을 손에 들고 가는 날을 생각해 보세요. 나도 모르게 우산으로 주위 사람을 치게 되나요, 아니면 어디에도 부딪히지 않고 잘 들고 가나요? 손에 든 우산을 어떻게 인지하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산 길이를 신체의 가용 범위로 여기면 조작에 수월해지고, 그렇지 않으면 옆사람을 치면서 다니게 되겠죠. 운전을 잘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의 크기를 자신의 일부로 잘 인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물을 신체의 일부로 인지하는 능력은 일종의 자아의 확장입니다. 그렇다면 사물로 확장된 자아가 가상 세계로 확장될 수는 없을까요? '나'라는 사람을 인식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육체를 바탕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동안 아날로그 외에는 현실이 없었기 때문에 굳어진 생각입니다. 최근 들어 뇌과학에서는 뇌가 현실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정체성도 구성한다고 말합니다. 앞으로는 물질이 아닌 정보로만 구성된 신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메타버스는 낙원이 될까?
한 사람의 취향과 소속감, 정체성은 청소년기 이전의 경험으로 결정이 됩니다. '결정적 시기'라는 매우 특별한 발달 기간을 갖기 때문입니다. 뇌는 미완성인 채로 태어납니다. 인간의 경우는 태어나서 10년에서 12년 정도가 지나야 완성이 됩니다. 경험을 통해 필요 없는 기능은 버리고 중요한 기능은 강화하면서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나가죠. 나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도 이때 형성됩니다. 성인이 되어 인터넷을 접한 사람에게 그곳은 영원한 가상 세계이지만, 어릴 때부터 인터넷 세상을 경험하고 그곳에서 경험과 추억을 쌓으면 고행과 같은 곳이 될 수도 있겠죠.
정보가 귀하던 시절에는 아는 것이 곧 지식이었습니다. 정보가 많아지면 세상이 빠르게 발전하리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정보의 가격을 낮아지자 거짓 정보를 퍼트립니다. 또한 현재 인터넷 안에서는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뭉치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비난하는 편향이 강하게 존재합니다. 메타버스 어떤 장소였으면 하나요? 자유로운 소통의 장이 될지, 또 다른 전쟁터가 될지는 우리가 행동하기 나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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