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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왜 없었는가?> 린다 노클린

by 캉쓰 2022.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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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왜 없었는가?>는 페미니즘 미술사의 시초가 되는 글이다. 린다 노클린은 '왜 위대한 미술가는 없었는가?'라는 질문에 단순히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에 녹아 있는 함의에 물음표를 던진다.

 

당신은 어떻게 답변하고 싶은가요?

누군가 질문을 던진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질문의 속뜻은 이렇다. "음, 만약 여성이 정말로 남성과 동등하다면,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들이 한 명도 없었을까?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답변은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해 가려져 있는 여성 미술가들이 있다. 그다음으로는 남성적 가치관이 아닌 여성적 가치관을 가진 차별화된 위대함이 있다고 하는 답변이다.

그러나 린다 노클린은 이 두 가지 답변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한다. 이 두 가지는 '왜'에 집중한 답변이다. '왜'에 초점을 맞추면 고찰해야 하는 문제들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넘어가게 된다. 린다는 '위대한'이라는 어휘에 집중한다.

 

p.25

하지만 그런 학문적인 연구는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라고 묻고, 그 질문의 배후에 놓인 가정들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반대로, 뭔가 답하려고 시도하는 바람에 오히려 질문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를 암묵적으로 강화하고 만다.

 

 

위대한 예술이라는 허상

 

대중들은 의례 예술가란 타고난 천재들이며, 어떠한 계기가 작용해 천부적인 재능이 발휘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술은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술은 자기 일관성의 언어로 만들어지는데, 이를 위해서는 오래도록 실험하는 과정을 거쳐 습득하고 탐구해야 한다. 학교 교육이나 도제식 교습, 독학을 비롯한 배움의 과정이 필수다. 이 점을 간과하면 왜 미술 분야에서 유독 백인, 중산층, 남성이 돋보이는지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이를테면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따르는 것이 정상처럼 여겨지던 시절, 위대하든 위대하지 않든 예술가 대다수에게 예술가 아버지가 있었다. 

우리 사회의 제도적 구조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고, 그 제도에 소속된 인간에게 어떤 현실을 강요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p.37 

사회학적 지식을 근거로 하는 제도 지향적인 접근 방식은 미술사라는 전문 분야가 낭만적이고, 엘리트적이며, 개인 예찬과 전기 위주의 집필을 하부구조로 삼고 있음을 폭로한다. 

 

 

 

왜 귀족계급에는 위대한 미술가가 없었는가?

예술가라는 직업과 사회 구조의 연관성은 위의 "왜 귀족계급에는 위대한 예술가가 없었는가?"라는 질문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19세기 이전까지 상류 중산층 이상의 귀족 계급은 예술가로 출세하기가 어려웠다. 미술을 취미로 가졌고, 교육 여건도 완벽했고, 여가 시간도 풍부했는데 말이다. 이들도 여성처럼 예술혼이 선천적으로 결여되어 있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잰,ㅇ의 문제라기보다는 귀족과 여성에게 주어진 요구와 기대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필수적인 시간을 바쳐야 하거나 요구되는 활동이 있다면 예술을 위대한 경지까지 습득할 상황이 되지 않는다. 

 

p.44

의미상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지능은 (중략) 유아기부터 한 단계 한 단계 세밀한 정도만큼 쌓여간다. (중략) 이 패턴은 아주 이른 나이에 확립되기 때문에 비전문가의 눈에는 처음부터 타고난 듯 보이는 것이다. (중략) 천재성이 예술 창조의 주된 요소라는 생각을 버려야 함을 시사한다.

 

 

현문현답을 위해 (소감)

한때는 대답을 잘하고 싶었고, 최근에는 질문을 잘 던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물론 둘 다 갈 길이 멀다) 잘 묻고 잘 대답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린다 노클린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 

"질문 너머를 봐."

말에는 우리가 살아오면서 만든 관습이 묻어있다. 익숙한 말이라 해도, 익숙함과 옳음은 다른 영역이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면 잘못 형성된 생각에 매몰된다. 린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을 인용한다. "평상적인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보인다. 남성에 대한 여성의 복종이 보편적인 관습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당연한데도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다."

 

페미니즘 미술사의 초석을 다진 책이자, 내 안에 새로운 시야를 제공한 책이다. 익숙한 말에 속아 나태하게 녹아드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하게 대답하려고 끙끙대고 싶지 않다. 현명한 질문에 현명하게 답하는 사람이고 싶다.

 

p.32

누가 이런 '질문'을 만들고 있는지, 과연 어떤 목적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의문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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