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텍스와 유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들어본 적이 많지 않을지도, 혹은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보텍스(vortex)는 소용돌이라는 뜻이고 유체는 기체와 액체처럼 외부의 힘 등에 의해 계속 변형되는 물질을 일컫는다. 한때는 이 보텍스와 유체가 과학의 주류 이론으로 과학계를 이끌었었다. 그 후 여러 검증과 발견에 따라 하나둘씩 반박되고 지금은 잊힌 과학이 되었다. 그러나 비록 지금은 잘못된 과학이라고 판명이 났다고 해도, 유체 과학을 연구함으로써 발전한 과학이 있고, 유체 과학을 반박하려고 발전한 과학의 한 부분이 있다. 하여 유체 과학사를 제외하고 현재의 과학을 논하면 과학사의 일부가 소실된 모양이 된다. 이렇게 과학사의 온전한 모습을 찾아가고자 쓴 책이 민태기 박사의 <판타 레이>다. 벽돌 책까지는 아니지만 얇다고도 할 수 없는 이 책을 (참고문헌 제외 480p, 총 548p) 주 5일 하루 한 장씩 읽기로 했다. 오늘은 이틀째로 1부 2장 <소용돌이와 저항> 부분을 읽었다.
데카르트의 보텍스와 뉴턴의 만유인력
에테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주 안에 에테르라는 보이지 않는 물질이 가득 차 있고, 이 물질의 흐름 (보텍스)이 물체 간에 영향을 줘서 천체의 활동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과거에는 말이다. 1644년 출간된 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 이후 40여 년간 보텍스는 유럽 과학계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보텍스 이론으로는 케플러의 법칙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1987년 뉴턴은 <프린키피아>를 출간하여 본격적으로 보텍스 이론을 반박한다. 하지만 당시 학계에서는 반발이 심했다. 만유인력은 행성 간에 직접적인 물리 작용 없이 원격으로 작용한다는 것인데, 당시로서는 미신적인 발상으로 과학이라고 할 수 없었다.
연금술로 주조한 화폐
한편 연금술은 지금과는 달리 과학의 한 영역이었다. 뉴턴도 연금술에 심취해 있기로 유명했다. 허무맹랑해 보이기만 한 이 연구들은 현재의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뉴턴의 화폐개혁으로 말이다.
때는 뉴턴이 조폐국에서 일하던 시기다. 당시에는 은화 동전의 테두리를 깎아서 액면가치가 낮은 화폐만 유통이 되고 있었다. 당연히 시장에서 화폐가치가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뉴턴은 동전 테두리에 톱니 바퀴를 새겨 넣어 화폐의 손실을 방지했다. 그리고 합금 기술을 이용해 위조할 수 없게 했다. 합금기술은 뉴턴이 연금술을 오래 연구한 덕분에 가능했다. 또한 수학적 이론을 총동원하여 생산 공정을 최적화했고, 단시간에 화폐 교체를 이루어 냈다.
명탐정 뉴턴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조폐국에서 일하던 뉴턴의 활약이다. 사무실에만 앉아 머리로만 씨름할 것 같은데 의외로 그렇지가 않았다. 스스로 수사관이 되어 많은 화폐 위조범들을 체포한다. 런던의 범죄 집단과 거래를 하기도 하고, 밤거리 유흥가의 단골로 위장하는 등 직접 증거를 수집하며 거물급 화폐 위조범들을 잡아 처형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 추리 소설을 읽은 탓인지, 뉴턴을 모델로 셜록 홈즈같은 추리물이나 범죄 스릴러를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써줬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드라마로!
마지막은 주식 투기로 엄청난 재산을 날렸던 뉴턴의 말로 마무리하겠다.
"내가 그래도 천채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는데, 인간의 광기는 도저히 모르겠더라."
덧)
뉴턴이 주식 투기로 망한 사실은 의외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후에 엄청난 돈을 번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뉴턴은 투자의 귀재였다. 일시적으로 돈을 잃기는 했지만 금세 재산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큰돈으로 만들었다. 죽기 전의 재산이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60억 원이 넘는다고 하니 투자의 귀재라는 호칭이 괜한 것이 아니다.
저자는 2021년 10월에 발사된 누리호 로켓 엔진의 핵심 부품인 터보 펌프의 개발자이다. <조선일보>에 [사이언스스토리]라는 칼럼을 연재한 글을 (주)사이언스북스에서 펴냈다. [판타 레이: 혁명과 낭만의 유체 역학사]는 보텍스라고 하는 과학사에서 단 한 번도 밝혀진 적이 없는 놀라운 미싱 링크를 추적하며 유체 역학의 역사와 과학의 역사, 그리고 그 과학을 낳은 사회와 사람들의 역사를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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