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길을 나서는 남자가 있습니다. 목적지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자신의 여정에 '모험'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걷고 또 걷습니다. 구원 대신 소설가가 되기 위한 열망을 품고 말이죠. 그는 과연 소설가가 되었을까요?
브런치에 연재한 글을 모아 만든 책입니다.
'그는 과연 소설가가 되었을까요?'라는 질문에 싱겁게 답하자면, '그렇습니다'.
길 위에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녹여 소설 [레지스탕스]를 출간했습니다.
혼자 배낭을 짊어지고 고독과 싸우면 자시 내면으로 깊이 침잠하는 여정.
순례길에 대해 잘 모를 때는 막연히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순례길 여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작가는 이 여정에서 '가족'이라고 부를만한 순례길 동반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힘을 얻어 순례길을 열심히 걸어나갑니다. 한편으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죠. 함께와 혼자 사이의 적정한 선을 현명하게 찾아갑니다. 그 모습에서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어'라는 책 제목이 생각나서 좀 뭇었어요. 작가님 MBTI가 E와 I 사이 어딘가 일 것 같아요. ㅎㅎㅎ
잘 쓰인 소설에는 외면적인 목표와 내면적인 목표가 같이 존재합니다. 외면적 목표는 주인공이 대놓고 추구하는 목표, 내면적 목표는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채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죠.
인생에서 우리는 목표 그 자체를 중심으로 놓고 생각하지만, 성취와는 별개로 과정에서 얻는 것이 많습니다. 이 이야기도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것, 소설가가 되는 것이 표면으로 나와 있지만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겪은 일들이 모두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 소개
이우
방황을 동경해 26개국을 홀로 여행했다. 두 번의 산티아고 순례를 떠났으며, 글을 쓰겠다며 모로코와 프랑스에 머물렀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레지스탕스], 에세이집 [자기만의 모험], 시집 [경계에서], 주간 단편소설지 [위클리우], 오디오 단편소설집 [아와비아]가 있다.
책 속 문장들
p.18
하지만 내가 되고 싶던 순례자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원대한 목표를 가진 개척자, 강인한 모험심을 가진 탐험가, 꿈을 잃지 않는 몽상가에 가까웠다. 낭만적인 시인이며 멋을 아는 소설가이기도 했다. 그런 순례자가 세상에 있었던가. 아니, 듣도 보도 못했다. 그래서 내가 그런 존재가 되기로 결심했다.
p. 75
순례자는 날이 갈수록 남루해져 갈 뿐이다. 남루해져 간다는 것, 그것은 다른 의미에서 거추장스러운 모습을 한 꺼풀씩 벗어낸다는 것이다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허례허식을, 세상이 부고했던 의무들을, 영문도 모른 채 당연시하며 좇아야만 했던 가치관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것이다. 벗어내고 벗어내다 보면 남루해져 가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등한시했던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모든 것을 드러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맑고 투명하면서도 고귀함마저 느껴지는 남루함이었다.
p.104~106
"우리는 경주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잖아. 순례를 하며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온 거지." 어째서 나는 순례길에 법칙을 정해놓고 있었던 것일까. (중략) 그녀와 함께하며 순례에도 각자의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친구들과 함께 걷고, 자고, 또 먹고 하다 보니 그것만이 순례의 정석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나의 삶도 그러하지 않았던가. 주변 사람들에 나 자신을 맞춰왔다. 그리고 그들보다 뒤처지면 불안해했다. 나만의 삶의 템포가 있기는 했던가. 나만의 삶이 가진 색깔이 무엇이었던가.
p.198~199
목적지에 도달하면 나는 좀 더 지혜로워지고, 용감해지고, 성장해 있으며,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내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산티아고에 기대해던 것들은 하나도 없었다. (중략) 도대체 나의 산티아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렇게 산티아고에 도착한 나는 산티아고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p. 216
사실 나는 길 위에서 두 개의 순례를 하고 있었다. 하나는 두 발로 걷는 육체적인 순례였고, 또 다른 하나는 문장을 남기며 걷는 정신적인 순례였다. 전자는 마무리 지었지만, 후자는 그러질 못했다. 이제 끝낼 차례였다.
p. 228
서사시의 마침표를 찍고 나서야 깨달았다. 산티아고는 나의 방황과 모험의 '원형'이라는 것을. 전혀 새로운 여정을 떠났다고 생각했건만 나는 여전히 그날의 모험을 답습하고 있었다.
p. 12
우리는 스스로의 이정표이자 신화가 될 수도 있다. 그때만큼의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포부를 품을 수 있다면, 지혜를 가질 수 있다면....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 세상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다. 이제 모두가 의아해한다 하더라도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 여정에 나설 이유는 충분하다. 자기만의 모험, 자기만의 영웅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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